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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청소년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이문화 수용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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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사입력 2019-12-23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세계의 뉴스와 정보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나스닥, 다우존스, S&P, 닛케이, DAX 등 주식시장은 물론 미․중간 무역전쟁, FTA 등의 소식을 들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의 현실과 격동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속에서 존재감을 들어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세계를 이끄는 영향력에 가슴 벅찬 긍지와 함께 탁월한 역량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과거 우리가 수없이 되뇌던, 대한민국의 성장에 대한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작은 나라, 적은 자원, 강대국에 둘러 싼 약소국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자성예언적(自成豫言的) 자각은  인재, 인간, 사람의 탁월한 힘을 갖추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강력한 대한민국의 힘의 원천이 되었기에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의 청소년에게 추가해야 할 발달과업이 하나 더 있어 보인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의 협력과 경쟁을 위해서는 모두의 생각의 가치를 존중해 주어야 하듯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사고의 확장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선진세계의 문화이해는 당연하다고 믿으면서 자꾸 우월적 상황을 만들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 스스로도 다른 문화수용의 준비와 자세는 여전히 속도가 더디다. 

 

다문화의 예를 들어본다면 인구는 약 32만 가구에 약 100만 명에 달하고 있어 이제 사회 저변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으나 가끔 나타나는 폐쇄적 대응이나 아집적 우월성으로 인한 문제적 상황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의 확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월적 판단이라는 시각이 기저에 갈려 있는 이중성이 강하다는 우려감도 있다.

 

최근 세계문화 속에서의 한류영향력을 보면 우리 청소년들의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갖춘 에너지와 역동성이 있음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원더걸스를 필두로 뽀로로, 아기상어, BTS, 펭수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 대한민국에서 만드는 어떠한 것들은 세계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기제(mechanism)로 작용을 하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한류의 세계화는 아마도 미국중심의 오랜 문화적 지배세력에 대한 반발과 편중성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려는 변화와 혁신의 사고전환과 우리의 역동성의 아이콘이 적절히 혼합되어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문화면에서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 인도,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도 세계를 주도할 여력과 힘은 충분해 보이지만 2% 부족해 보이는데 우리의 청소년들은 2% 넘치게 채우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찾을 때 고려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을 본다면 이는 경제적 수준에서 다소 우월적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 지금까지 빌보드차트, 또는 팝송, 할리우드, 영어문화 일변도에서 벗어나더라도 경쟁력이 있어야 할 것, 포노사피엔스 또는 밀레니엄세대라 일컫는 이들의 시대적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다이나믹한 역동성이 있을 것, 이 모든 것을 채우더라도 특정한 목적(주술적인 면, 특정 정치적 이슈 등)에서 자유로울 것 등과 같은 조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문화는 이들의 요구에 최적화된 수준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열정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철저한 기획과 전략을 기반으로 마음을 얻는 방식에 근거하여 문화의 확산을 주도하고 있음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청소년의 힘이 깔려 있다. 좋은 콘텐츠가 있어도 인적 자원의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별무소용이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수업만 받아야 하고 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면 한류의 확산이 가당치나 했을 법인가? 

 

학교의 교육적 무용론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역량을 갖춘 청소년들이 있었기에 한류의 세계화가 가능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능하다는 진행형이 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청소년시설에서 동아리활동, 체험활동, 청소년활동 등을 통해서 자기들끼리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창조의 자유, 혁신의 자유를 만끽하며 경험을 한 결과 세계가 두렵지 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은 이전의 세대와 달리 문화적 수용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을 갖추고 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한류가 세계화로 확산되는 뿌듯함은 물론 강점이자 강조되어져야 할 것이지만 이러한 문화 확산에 대한 전제는 타 문화에 대한 존중, 타 문화의 장점을 인정하고 설명하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서구의 선진문명중심의 사고관이 내재되어 있어 경제적 부의 여부, 문명의 수준에 따라서 수용과 거부, 인정과 무시 등과 같은 행위를 일삼고 있다.

 

그래서 어떠한 문화든 사람은 서로가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에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행위가 있고 그 행위를 통해 집단적 특성 등을 유지하게 하는 힘의 원천을 아비투스(habitus)라고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설명하면서 문화는 그 이면에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은 문화나 나쁜 문화, 수용문화나 거부문화가 아닌 모든 문화 그 자체로도 존중해 주어야 하며, 모든 이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청소년들은 우리 문화가 널리 확산되고 벅찬 느낌을 느끼거나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우리 서로의 사람, 동료, 친구, 집단, 지역 등에서의 차별을 갖지 않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또 세계인의 문화가치를 얻기 위해 숭고함, 존중, 인정 등의 열린 생각을 하게 되는 이문화 수용역량을 확장한다면 청소년은 큰 도전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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